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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 이것은 <무간도 2>에 대한 찬사!!! (2004. 6. 30)

메이븐 2004. 6. 30. 22:42



시험만 끝나면 그간 별러왔던 영화들을 몽땅 다 몰아서 볼 거라고 야무지게 맘을 먹고 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요즘 보는 영화들이 하나같이 다 재밌습니다. 오늘은 무간도 시리즈의 완결, 무간도 3을 보았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무간도 2가 정말 생각나더라구요. 역시 무간도 시리즈의 지존은 무간도 2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세기 최고의 홍콩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무간도 2에 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금세기 최고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아요. 누가 뭐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간도 2를 보고,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빨리 무간도 3을 볼 기회만 기다렸습니다. 시간적 전개 때문에 무간도 2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양조위와 유덕화가 다시 등장하고, 전편에 걸쳐 모두 등장하는 황추생과 증지위, 3편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여명(안 어울렸어요-_-)까지. 초 호화 캐스팅으로 무간도 3편이 만들어졌는데요. 기대가 너무 커서였는지 보고 나니 조금 허무한 기분이 드네요. 전작 무간도 2에서 기대치를 너무 높여서였던 것 같아요.

<무간도> 시리즈를 보면서, 특히 무간도 2를 보면서 느꼈던 건 각본을 쓴 사람이 무지 영민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감독이 각본까지 썼더군요) 일단 이런 얼개의 스토리라인을 구상하고서 그 스토리라인에 <무간도> 라는 제목을 붙인 것 자체가 정말 놀라웠어요. 무간도 1을 인간적인 연민에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았던 반면, 무간도 2를 보면서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간도> 라는 제목이 주는 함의를 영화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어요. 시간, 공간, 인간 에 관한 이야기가 무간도 2에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양조위와 유덕화 같은 초 호화 캐스팅은 없었지만, 연기파 배우들로 구성된 모든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그 어느 홍콩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었어요. 좋은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느끼는 두근거림이 이 영화에도 있었어요. 정말 이 등장인물들이 어딘가에 실재했을 것 같다는...

무간도 2의 묘미는 단순한 1편의 과거 서술이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부터 거슬러올라오는 동안 맞닥뜨리게 되는 1997년이라는 시점. <무간도> 라는 제목은 1997년 홍콩 반환 시점의 홍콩에 대한 훌륭한 시공적 은유입니다. 그것이 무간도 2에서는 극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었어요. 홍콩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철학적인 주제까지 훌륭하게 소화한 무간도 2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줍니다. 초 단위로 채칵채칵 소리를 내며 맞물리는 수많은 태엽들로 구성된 시계의 내부... 무간도 2를 보며 느낀 감상이 바로 저러했습니다.

소위 수퍼스타인 유덕화 양조위를 2편에선 찾아볼 수 없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견 조연들의 연기 덕분에 이 영화는 더욱 빛났습니다. 증지위, 황추생, 유가령, 오진우 등의 연기는 너무나도 리얼해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그 세계에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는데요. 오진우의 연기도 정말이지 근사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역시 증지위였습니다. 이 배우를 처음 봤던 게 중학교 때 어느 영화에서였는데요, 아마 여자주인공이 종초홍이었을 거예요. 그 영화에서 증지위는 정말 나쁜 놈으로 등장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등에 뱀 문신을 새긴 다음에 팔아먹는-_- 나쁜 놈이었는데요. 그래서 한동안 증지위를 보면서는 나쁜놈 이미지를 떨치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멋진 역할을 그리 맡지도 않았습니다)

증지위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건, 금지옥엽 시리즈를 지나 첨밀밀의 미키마우스 아저씨로서였을 거예요. 하지만 증지위 연기생활에 가장 빛나는 작품은 바로 이 무간도 2가 되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아, 연기 정말 최고였어요. 홍콩이 반환되던 날, 옛 애인(유가령이 연기했습니다)과 함께 찍은 낡은 사진을 바라보다 혼자 하늘을 향해 잔을 들던 모습.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던 장면들을 정말 잊을 수가 없네요.

장국영도 죽고, 매염방도 죽고, 주윤발은 저렇게 되고, 홍콩 영화가 기울어 간다고 울적했던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무간도 2를 보고, 어쩐지 아직 울적해하긴 이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대를 갖게 되었어요. 소녀 시절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홍콩영화, 여린 감정선을 자극하던 그 시절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의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만 같습니다. 무간도 시리즈를 보면서 그 옛날 홍콩 영화를 좋아했던 나의 소녀시절이 완전히 가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대신 함께 자라 온 새로운 영화를 새로운 시절 위에서 만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금세기 최고의 홍콩영화라는 말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품격>이 있는 영화였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동감하실 듯 합니다. 아아, 무간도 2. 참 좋은 영화였어요.